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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음악치료를 받기 위해 클리닉에 오는 아이 중에는 “(s)elektiver Mutismus” 라는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종종 있다. 내가 맡은 아이 중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그중에 속하는데 한 명을 제외하곤 주로 독일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환경 가운데 있는 아이들이다.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독일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는 오랜 세월을 독일에서 살고 있으나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거나 사용하지 않고 병행사회 안에 갇혀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독일어로만 의사소통되는 환경을 직면하게 되는 아이 중에는 건강한 적응력으로 재빠르게 독일어를 습득하는 아이들이 대개의 경우이지만 소수의 약한 아이들은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심각한 경우에는 몇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이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음악을 (대부분 다루기 쉬운 악기로 하는 즉흥연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이 교차하게 되고 결국은 마음을, 노래를, 말을 나누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게다가 치료사도 흥분하면 엉터리 독일어를 구사하기도 하지 않는가??^^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의 시간이 길어지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 어느날 문득 이 아이들은 대화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자기를 표현하지 못했던 답답함, 이해받지 못해 쌓인 갑갑함, 분노를 음악으로 말로 노래로 몸짓으로 토해내며 공유와 소통의 기쁨에 환호한다.

문득 이 아이들을 보며 스스로 묻게 된다.
나도 또한 때로는 선택적 벙어리 노릇을 하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Guten Tag!" 혹은 "안녕하세요! “ 만 건네기도 어려워하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 어떤 사람들이 요즈음 내 주변에 자꾸 늘어난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는 것. 내 안에 숨어 있는 오래된 아이가 오십의 나를 이기고 있다는 것.
내 일상의 규칙과 어려움에 버거워 스스로 혹독히 훈련하며 분주히 사느라 매 순간 나와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내 하나님께 조차 나를 털어 놓고 의뢰하는 것을 잊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