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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2>

본문 계2:18-29, 3:1-6, 3:14-22

 

오늘 성경에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내 아버지와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5)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이름을 직접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순간일까요?

하나님의 평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듯 양편으로 나누어 ‘창세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저주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을 시인’하시기도 하지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외면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는 편지들이 보내어진 다른 여섯 도시들에 비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명했던 것이 있는데, 구리와 청동 제련업입니다. 또한 그 지방의 지역 신이 있었는데, ‘아폴로 튀림네우스’라는 청동 교역을 후원하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18절에서 예수님을 묘사할 때, ‘그 발이 빛난 주석(놋쇠)같다’는 설명이 의미있게 읽혀집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어떤 우상이라도 철장으로 질그릇 같이 깨부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곳에 위치한 두아디라 교회는 갈수록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가 많이 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20절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세벨에게 미혹되어 우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영적 간음의 문제였습니다.

이때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찾아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아무리 오래다니고 성경 공부를 많이 해도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 행위가 아니라 마음 속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중심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 사데 교회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처음 하신 말씀이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무슨 의미일까요?

겉보기에 외적인 신앙은 아무 흠이 없어 보이나 그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신앙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3장 2절에서 쓰여 진 데로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 온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 자신의 뜻대로 살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성도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마12:50)
성도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며 몸부림을 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3.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는 금융의 중심이며 좋은 의술 학교와 고급 양모 생산지로 대체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한가지 부족한 것은 양질의 물이 없었습니다. 물을 공급받기 위해 북쪽 지역에 있는 온천수를 7,8Km 떨어진 곳에서 끌어와야 했기에 도착하면 미지근한 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동쪽으로 골로세 지방에는 눈 덮인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이 있었으나 이 역시 18Km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오다보면 미지근한 물이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요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렸으나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행위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음을 책망하시며 열심을 내고 회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자신의 영적 형편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오늘날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며 열심을 내려고 하지도 않고 더 이상 변화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열정이 사라진 교회들이나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교회나 성도들을 주님은 토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오늘 우리에게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소망은 이 땅위에 세워진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기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회복을 바라십니다.

1)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청년들이여! 열정있게 살아 갑시다. 기도와 찬양, 섬김과 사역, 자신의 삶을 열정있게 삽시다.

장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85세의 나이에 노익장을 발휘하였던 갈렙을 신앙을 본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열정을 회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합시다.

2) 깨어 있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고 과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누가 문을 열 수 있을까요? 깨어 있는 사람이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시간에 돌아오는 집 주인과 같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과 영원한 나라에서 함께 할 즐거운 만찬은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을 직접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