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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열매를 기대합니다>
본문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 모든 이들의 삶 속에 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추수 감사 주일을 맞아 풍성한 과실들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도 이런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또는 하나님의 기대를 아는가?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 어떤 열매를 기대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향하신 부르심의 소망 또는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의 기대를 알아 내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가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열매 맺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정, 직장 삶의 현장에서, 또는 사역의 현장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각자 나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갖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 야지 낡은 부대에 넣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만약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을 시에 터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왜 터져 버릴까요?
예수님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포도주를 보관하거나 운반할 때 가죽 부대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가죽 부대는 오래 사용하게 되면 탄력이 줄어들고 딱딱해 집니다. 딱딱해 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가스를 발산시키게 됨에 따라 부대가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포도주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는데, 포도나무의 열매는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삶과 사역을 통해서 맺은 모든 열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포도 열매로 만드는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삶과 사역을 통해서 전하신 복음의 진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비롯해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심판…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신 구원의 사역… 이런 것들을 새 포도주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새 부대는 자기 의와 욕심 그리고 잘못된 세상 지식과 틀을 가지고 살던 예수님 믿기 전의 옛날 방식을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낡은 부대란…. 자기 중심적, 자기 의, 육신의 욕망 그리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지식과 틀을 신봉하며 살던 예수님 믿기 전의 나의 내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크리스찬들이 삶과 사역에서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옛 방식으로 살아 가려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었으나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의로 충만하고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지식으로 말씀을 자기 식으로 재단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따라 살아낼 만한 충분한 힘(영적 에너지)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킬 힘이 없다는 뜻이죠.

어떻게 해야 할까?
위의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날 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자.

새 부대란 자기 의와 욕심 그리고 잘못된 세상 지식과 틀을 가지고 살던 예수님 믿기 전의 옛날 방식을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지 않고 낡은 부대 그대로 있으면 아무리 오랜 교회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말씀이 지식으로만 쌓이기 때문에 날로 교만해지기만 합니다.

길가나 돌 밭,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은 제대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듯이 딱딱한 돌밭처럼 기경되지 않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로 맺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마음을 좋은 밭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잘 활동하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 씨앗같기에 좋은 마음 밭에 뿌려지면 자연스레 열매를 맺게 됩니다.

또 한 편으로 심령의 치유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오늘 날 상한 심령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치유되지 않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자꾸 찔림이 되니 오히려 악한 마음이 생기거나 화를 내게 합니다.

어떻게 치유가 되는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 보시는 것은 단 한 가지 주님을 향한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본인이 상처를 치료받고자 하는 자발적이며 지속적인 하나님 앞에 나아 옴을 요구됩니다. 의지와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권능을 받자.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따라 살아낼 힘(영적 에너지)이 없음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주님의 권능 뿐 입니다.

마10:1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사 권능을 주시니라’

권능이란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나눠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직접 해야만 합니다.

운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을 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운전을 해주는 경우와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하며 길을 찾아 다니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운전하시던 뒷 자리에 앉은 승객과도 같았습니다. 운전은 예수님이 다 알아서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주변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 즉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가르치는일과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일을 직접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조롱과 핍박받는 고난도 직접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모든 삶과 사역을 직접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세상 속에서 제자의 삶을 직접 운전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직접 주님의 일을 감당하며, 주님이 가신 길을 직접 찾아 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능없이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베를린 새누리 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권능으로 충만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권능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가 여러분의 삶과 사역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