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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본문 롬:3:1~3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편 배달부의 예가 적절해 보입니다. 우편 배달부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가 가진 물건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위탁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전달해야 하는 누군가를 위한 것입니다.

이 원리로 본문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1절에서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데요, 그들은 말씀(계시, 약속)을 위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드러내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특권의 징표로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한 문제는 오늘 날의 많은 교회에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계시를 이 세상에 드러내고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들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큰 위기입니다.

이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 세상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도 이러한 문제가 있음을 염두해 두었기에 3절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폐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이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다고 해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의심받거나 조롱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구원의 언약을 신실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셨듯이,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 그리고 오늘 날까지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중요한 질문들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나타난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역할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전을 받았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출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가 누구기에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해야할 때 꼭 이런 질문을 스스가 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기에, 어떻게 현재의 내 모습으로, 내 실력으로 이런 일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무슨 의미일까요?

모세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리고 너의 과거의 이력이나 현재의 실력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야.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면 넌 할 수 있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과거의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곱게 자랐기에 이 원리를 몰랐습니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 동족을 돌보려다가 애굽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결국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모르고 자신의 혈기나 힘으로 밀어 부치려던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보내야…

그에게 40년 동안의 광야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힘을 빼는 시간, 혈기도 없애는 시간, 교만도 없애는 연단되는 시기였습니다.

D.L. 무디는 모세의 광야 시간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40세까지의 모세는 자기가 무언가 된 줄로 착각을 했고, 그 후 40년의 광야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았으며, 그 다음 40년간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필수적인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 자신이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구제 불능 상태인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될 때,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며 능력이 됩니다.

우리에게 또 한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를 아는 것입니다.

출3:13절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의 또 한가지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갔을 때, 네가 왜 그런 일을 하며, 너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의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보이시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하십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 이적이었습니다. 뱀은 애굽 왕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어떤 놓은 권력이라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을 나병환자의 손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나병은 병든 이스라엘을 상징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모세의 평범한 지팡이는 하나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경험야 합니다. 그 분의 지혜를, 그 분의 능력을, 그 분의 성품을.

 

이번 주에 로마서3장을 읽을 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영혼의 큰 울림을 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깨닫는 자가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롬3:11)

베를린 새누리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시며 그분의 은혜아래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