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빚진 자인가>

롬8:28~39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가 의지할 만한 안전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나 자신을 믿는다?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의 육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로 연약해져 가며,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끊임없이 탄식하게 만드는 일들이 더욱 많이 생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자들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이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는 또 한가지의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 일까?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5~8장까지) 것의 최고의 절정이다.

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단계들이 다섯 가지로 소개되어 있다.

첫째, 미리 아신다(예지)… 미리 안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앞으로 믿을 사람들을 미리 이신다는 의미이다.

둘째, 미리 정하셨다(예정)… 예지가 예정의 기초가 된다. 예정은 ‘구원은 하나님의 뜻으로 결정이 된다’라고 이해면 된다.

예지, 예정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영역이다.
많은 복음적 신학자들은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구원받는 사람들은 첫 단계서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기에 인간의 공로는 철저히 배제된다.

예지하시고 예정하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 일이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26절 우리의 연약함(육체적, 정신적, 영적)을 성령께서 도우신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지속적으로 할 때,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치유하신다.

셋째, 부르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려는 자들을 부르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제 부르심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넷째, 의롭게 하심… 다섯째, 영화롭게 하심은…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신 자들을 성화시키고 영화롭게 하셔서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심을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지는데, 부르심과 의롭게 하심, 성화와 영화에 이르기 까지 한단계 한단계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계시니, 바로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Ⅱ. 31절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이런 상황인데, 누구인들 할 말이 남아 있겠는가?

요한복음8장에는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은 저마다 돌을 들고 이 여인을 고발하려고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다. 여인은 이제 곧 돌이 날아 오리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은 죄로 더럽혀진 자신의 모습에 수치를 느끼고 예수님과 여인에게서 돌아서야 했다. 이제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이 물음은 이제 아무도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다는 반어법이다.

오늘 날 마귀는 하나님 백성들의 대적자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활동하며 고발하고 정죄하는 일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

이때 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이렇게 변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이시니라’ 아멘!

오늘 본문에 이와 비슷한 문장이 몇 차례 반복된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고발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주시고 심판 날에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으며,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가 되셨기 때문이다.

원수 마귀의 대적이든지, 고발이든지, 정죄든지 이들의 공격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아무도 없다.
하루에도 기를 쓰고 달려드는 어둠의 세력이 아무리 많고 강할 지라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다.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라도 이 세상에 살면서 생기는 핍박이나 재난을 의미한다.

기근이나 적신이라도 일상에 필요한 의식주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시다.

위험이나 칼이랴. 실제로 있을 위협이나 죽음의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통이나 불행이나 상실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을까?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를 위험하게, 고통스럽게 만들고, 이 때에 우리의 믿음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아멘!

나아가 38, 39절은 오늘 말씀의 절정을 이룬다. ‘사망이나 생명이나(사망이나 생명의 위기), 천사들이나 권력자들이나(이 세상 권력자들이나 우주적인 어떠한 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시간), 높음이나 깊음이나(공간),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Ⅲ ‘내가 확신하노니’ 바울은 이 모든 일을 확신하고 있다.

이제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답을 해보자 . 나는 하나님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로마서5:5절 말씀을 다시금 기억해보자. ‘우리에게 부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음을 확신하는 방법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성령 충만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커져 갈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크고 작은 고난 중에서나 혹은 고통스러운 죽음의 문턱에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우리가 이러한 특권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거저 은총일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빚진자다.

우리는 오늘부터 빚진 자들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자.

이제 우리는 새 생명을 가진 자들로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할 때, 말씀에 신중히 귀 기울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보여 주실 것이며, 성령께서는 그 계획이 이뤄지도록 도와 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