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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참된 능력은 무엇인가>

본문: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서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은혜가 있다. 무엇일까?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교회에 당을 짖는 일이나 성적 부도덕, 법정 소송, 결혼이나 이혼)과 같은 문제들이 생겨나는데, 그 문제들의 근복적 원인은 십자가를 건너뛰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사만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교린도 교회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어쩌면 오늘 날 우리 세대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교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영혼이 더욱 메말라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현대 교회들은 점점 대형화 되어가지만 어쩐지 영혼의 허전함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오늘 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있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신앙생활에 두 가지 근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라는 객관적 근거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말씀을 전해도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히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듣는 자가 믿음으로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출애굽이라는 큰 비전을 갖고 모세는 바로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그때 바로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아무리 기적을 보여주며 하나님 말씀을 전달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바로와 그를 따르던 공동체는 명망의 길로 간다.

우리 베를린 새누리 공동체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기원한다.

체험이라는 주관적 근거
즉 십자가 체험이나 성령 체험, 하나님 사랑 체험이든지 실제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이 체험이라는 주관적 근거가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본문 말씀 18절 말씀에 의하면 십자가로 말미암아 두 부류로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 앞에서 멸망하는 길로 가는 자들, 이들에 대해 ‘미련하다’라고 한다. 또 한 부류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길로 자들로 이들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능력의 반대 개념으로 미련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럴까? 보편적으로 능력의 반대 개념이 약함이 아닌가?
능력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능력
오늘 본문에서 능력이라는 말의 의미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 오는 능력을 말한다.
효과 또는 영향력이라 해도 좋다.

아무 효과나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인들이 있었다. 십자가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미련함의 결과 그들의 스스로의 인생을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체험과 효과(또는 영향력)이라는 말을 설명
커피마시는 일을 예를 들어보자.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 성분 때문에 각성 효과가 나타나서 그 카페인 성분이 핏속으로 침투하게 되면 신경학적인 효과를 내는데, 그 효과는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절정을 이른다고 하는데, 아마 사람 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체험하면 그것에 대한 효과가 나타난다.

풍차를 생각해 보자. 풍차가 바람에 의해 움직이면 에너지를 생산해 내고 그것은 전기나 빛을 만들어 내는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이제 우리 신앙의 문제를 적용시켜 보자. 우리에게 체험적 신앙이 있다면 어떤 실질적 효과를 드러내게 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 체험을 했는가?
성령 체험을 했는가?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이나 삶에 실질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얻게 하는가?
생명, 경건,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 등 등…
이것을 통틀어서 은혜라 부른다.

그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실제적 효과(은혜)가 있다.

하나님과 화평, 그가 주시는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일이 바로 하나님과의 화평(화목)이다.
하나님과 화평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과 화평할 때 나머지 축복들이 따른다.

약 3:18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심는 것에는 선한 의의 열매가 맺힌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의 메시지에는 반드시 선한 의의 열매가 있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점검한다면 내 자신이 화평을 누릴 뿐만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로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끼쳐야할 영향력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평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능력은 하나님과의 화평이다.

말씀을 정리해 보자.
구원
구원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구원을 3 가지 시제로 설명하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난파된 배에서 구명보트에 의해 구조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선 위기에서 구출된 사람들(과거)이 있다. 그러나 구명보트가 안전한 항구에 이르기까지 구원을 받는 과정의 사람들이다.(현재 진행) 그들은 구명보트가 안전한 육지에 닿을 때 비로소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되므로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다.(미래)

우리는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지 구원을 다 이룬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늘 자기 절제와 자기를 돌아봄,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말할 때 두 가지 이해가 필요하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구원의 과정에 서 있는 우리, 그리고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에게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론
은혜의 보좌로 나가자.

성도의 신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존재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 있는데, 곧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이다.

의로움은 전에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이다.
거룩함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었다는 것이며, 죄의 더러움이 제거 되었다는 것이다.
구속함은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의롭게 된 자로서, 거룩한 자들로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며 그의 보좌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예배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우리를 권한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은혜의 보좌는 어디인가?
내 영혼이 쉼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나의 은혜의 보좌는 어디인가?
우리 모두가 그 곳을 찾아야 한다.

이번 한 주간 그 자리를 찾아 나아가 생명과 경건, 지혜와 능력, 위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한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