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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본문 골1:13~23

1.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삶의 목적이 다르며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다릅니다.

왜 우리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무엇이 다를까요?

1) 흑암의 권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이다.(13절)
권세란 명령하고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예수님 믿기 전의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사탄의 실질적 영향력 아래서 사상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두움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령의 영향력으로 빛 가운데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속량,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받은 죄사함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속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속량이란 죄의 종으로 살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시고 자유케 하셨다는 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일 부분이다. (15절 이후)
우리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목적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특별히 마음 속 깊이 새겨져야 할 말은 ‘나는 예수님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이해.

1) 예수 그리스도.
15절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9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 즉 하나님의 영(성령)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예수 안에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와 만물의 관계.(15 중반절 이후부터 ~17절까지)
모든 피조물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피조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 피조세계가 만들어진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7절에 보시면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리라’했으니, 무슨 뜻인가? 모든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주권자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18~20)

이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이요, 이 말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예수님) 포도 나무요, 너희는(교회) 가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있으며, 기타 열매 맺는 일이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교회 생활을 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고 그럭저럭 교회 생활을 하게 됩니다. 교회는 영적 운명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우리에게 큰 힘과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시 바랍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 즉 하나님의 영(성령)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예수 안에 충만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머리가 몸의 각 지체에 영향을 미치듯이,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그의 몸인 교회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 즉 하나님의 영(성령)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누리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교회를 아끼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3. 교회와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어느 영화 중인가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뭐시 중한디!’

과연 교회에서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과연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22절 ‘이제는 그의 육체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하나님 앞) 세우고자 함’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목적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온전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바울의 목표였습니다.
28절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심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
29절 ‘이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온전함의 요청은 먼저 나를 위함 입니다.
바울은 ‘내가 매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먼저 자신의 온전함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그 다음으로 공동체가 함께 온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를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온전함은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를 타락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일은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공동체 전체가 아플 수 있습니다. 교회 리더가 인본주의라면 그 공동체 전체가 쉽게 인본주의로 물들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각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아침 예배에서 간증을 들으며 느낀 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형제, 자매의 삶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며 은혜를 배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기 보다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공동체 가족 모두가 더욱 성장하며, 더욱 깊은 영성으로, 더욱 온전함으로 나아갑시다.

4. 온전한 사람들로 세워지기 위해서 우리들의 적절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23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1) 믿음에 거하고
나의 믿음이 얼마나 참된 믿음인가?

2) 터 위에 굳게 서야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3)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아니하면
복음이 과연 나에게 소망을 주는가?

 

결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지는 일은 그냥 어느 날 운명처럼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과정이 따릅니다.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십니까?
진주는 조개의 몸안에서 만들어 집니다. 조개의 몸속으로 모래알이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조개는 엄청 고통스러워 합니다.

모래알이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가지의 반응을 하게 됩니다.

첫번째로는 몸속으로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해버리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조개는 결국 병에 들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의 경우는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의 받아들입니다. 이때 조개는 자신 안에서 즙을 짜내기 시작하고 이 즙으로 몸 속에 들어온 모래를 감싸게 됩니다. 이렇게 몇 년에 걸쳐서 진주 층을 만들어 지는데, 이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우리 삶에 들어 온 문제들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냥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아프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씨름할 것인가를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씨름을 할 때, 우리 안에 숨겨진 결점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될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