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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본문: 고전16:13, 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 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공동체의 구성원이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가 될 때 가능합니다. 신뢰가 회복될 때 사역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과 14절의 문장은 5개의 명령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5개의 명령어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신뢰받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교회는 건강해 집니다.

‘깨어 있으라’

성경에 ‘깨어 있으라’는 말과 함께 줄곧 이어지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43절까지를 보시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 대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개의 동사가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

예수님께서 어느 때에 오실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재림의 때를 어떻게 또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먼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며 주님 재림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관심과 하나님의 관심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39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홍수 전에 멸망한 사람들의 삶은 ‘타락’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들은 그저 ‘일상의 생활’을 잘 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는 일들이 뭐가 그리 잘못된 일입니까?’ 이렇게 항변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관심 있는 육신적 일만에 골몰하며 살아가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4:45-51에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교회에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있고 반면에 “악한 종”들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하여 주님의 재림에 관심이 없고 맡겨진 일에도 관심 없는 악한 종에 대한 비유합니다.

이어서 마25:14-30에서는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종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의 의미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것이 또 없을까요?
마태복음25장 1절부터 13절까지에는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 가운데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로 비유가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령으로 채워지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채우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깨어 있음과 늘 같이 붙는 말은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구호와도 같습니다. 깨어 있으라. 기도하라.
신앙인의 깨어 있는 삶이란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로 비유한 이유는 깨어 기도하지 못 한 것을 미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라는 단어는 계속 깨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비상대기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보초가 경계를 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보초는 위험 요소가 침투하지 않을까하여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 깨어 있지 못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마비되어 무감각한 상태(예:신경 감각이 마비)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마비가 되면 영적인 위협이나 위험을 느끼지 못합니다.

벧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나니’
오늘날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마귀의 도전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시며 깨어 있는 베를린 새누리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

복음을 체험하셨습니까? 그 복음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흔들림 없이 확고한 입장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가 신뢰받는 성도입니다. 갈대와 같이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이리 저리 흔들리는 이런 지조없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세상의 어떤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남자답게’
이 말씀은 넓은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서로 편을 가르고 서로 비판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미숙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3장에서 교회 성도들에게 어린아이와 같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성장해서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했습니다.
남자다운 신앙 즉 성숙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다운 신앙은 넓은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숙한 하나님의 일꾼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건하여라’
이 말씀의 의미는 몸의 강건 뿐만 아니라 내면의 강건함을 말합니다.
시31:24 ‘강건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우리의 모든 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감기 몸살로 육체가 허약할 때, 조금 부는 바람에도 살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몸이 건강할 때는 거센 바다 바람을 맞아도 끄덕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속사람 즉 마음이나 정신, 영이 연약하면, 조금만 상황이 어려워져도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냥 아프기만 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가야 하는 세상은 늘 쉴만한 물가나 푸른 초장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둡고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 영을 강건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고통스러운 밤을 지낼 때마다 임재하셨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8:9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행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행27:23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죽음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던 밤에도 하나님은 바울에게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을 성숙하게 하고,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가 통과했던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깊이 있게 만들고 하나님을 깊이 있게 체험하게 만드는 것은 어두운 밤을 통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담대하라!’고 얼마나 많이 말씀하십니까?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주님께 붙들 릴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너희의 모든 활동을 사랑 안에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만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고전 13장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배워야 사랑으로 섬김이 가능합니다.
사랑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수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헌신과 봉사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의 수고로 인해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랑의 수고를 할 차례입니다.